기획 인터뷰-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카자흐 국립대 한국학과 장원기 교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카자흐스탄 한국어 교육 일선에 서다
한국 문화와 엔터테인먼트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도 커졌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문화 간 이해를 촉진하고 개인적인 성장의 기회를 열어 준다고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알마티에 위치한 한국교육원은 매 학기 천여명에 가까운 수강생이 몰리고, 아스타나 한국 문화원, 타지역의 세종학당과 사립 학원 등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이러한 취지로 한인신문에서 진행하는 기획 인터뷰-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다섯번째 주인공으로 카자흐 국립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장원기 교수를 만났다.
한국어 교육의 일선에서 수고하고 있는 장원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본인 소개와 카자흐스탄에는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카자흐스탄에 와서 받는 질문 중 가장 첫 번째 질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의 경우에는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어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인연이라는 것을 하나만 꼽자면 결국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가족을 데리고 카자흐스탄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고, 한국의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가르치다가 문득 해외로 나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큰아들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오게 된 게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에 어떤 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보다 내 삶에서 어떤 부분이 빠졌을 때 카자흐스탄에 오는 선택을 안 하게 되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요즘은 ‘K-문화’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K-문화’조차 평소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이 들어서 싫증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K-문화’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물론 제 생활도 그렇고요. 1990년대 전의 우리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더 익숙했고,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에 더 익숙했을 뿐이죠. 그렇게 여전히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외국인이 많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돌아보세요. 진짜 우리는 외국 언어를 배우고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만 익숙해야 할까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한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미 한국인 중 누군가가 ‘외국 언어를 배우는 것에 더,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더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우리 것을 알리는 일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K-문화’가 있겠죠. 한국을 알리고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일, 그래서 세계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더 커진 먼 훗날 내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Q. 카즈구 한국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데, 카즈구 한국어과 소개와 현장에서 느끼는 한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어느정도 입니까.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학교 한국학과는 1994년에 처음 개설되어 199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현재 160여명의 학생과 23명의 한국학과 교수진이 있습니다. 2024년이면 한국학과 개설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이제 막 힘과 열정, 도전 정신으로 크게 발전할 시작점에 놓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열정은 특별하면서도 요즘은 누구나 입에 올릴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산을 좋아해서 알마티에서도 산에 자주 가는데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에서 마주치는 카자흐인들이 저를 보면 ‘니 하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산에 가 보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부터 먼저 건넵니다. 그만큼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국에 대한 카자흐국립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의 관심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 만큼 교실에서 한국어 학습 의욕 또한 놀라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대학의 한국어학당에서 20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수업 내용을 3~6시간 정도로 압축해서 진행해도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이니까요.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을 바로 이럴 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학생들의 수준과 열정이 이 정도이니 교수는 교재 내용 외에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또 다른 고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 카자흐스탄에 와서 학생들이 먼저 어떤 “K-드라마가 재미있다, 어떤 K-POP이 좋다”라고 해서 보고 듣다가 어느새 최근에 나온 웬만한 드라마는 거의 다 보게 된 것 같습니다. K-문화를 이야기할 때는 어느새 학생이 교수가 되고, 교수가 학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Q.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보람 있었던 것, 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까.
너무 상투적인 말이겠지만 특별히 힘들었던 적은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으니 매 순간이 보람되고 특별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10월 9일과 10월 25일에 맞춰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작지만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이 되면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나 문구를 종이에 쓰고 꾸민 후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활동이지만 한국어 어휘를 자신이 선택해서 꾸미고 보면 그때부터 그 단어나 문구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글날은 알지만, 한국인들도 10월 25일은 어떤 날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수 있습니다. 바로 ‘독도의 날’인데요. 이 주제로 학생들과 이야기하려면 관련된 한국어 어휘, 문법 같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 대해 학생들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 단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홍보 영상이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편으로는 카자흐스탄도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 온 터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직 한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학생들인지라 자세한 내용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한 학생이 독도에 대한 조사와 내용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주제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세상을 지향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지, 세계인이 평화와 화합, 인권과 공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지에 대한 주제였고, 독도는 그저 그 예일 뿐이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 정도 수업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 발표 이후 교수로서 학생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교수로서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학생을 만날 때, 그래서 교수를 더 노력하게 만드는 학생을 만날 때, 그때가 바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개선 사항으로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다양한 교재가 필요합니다. 한국어 교재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재가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사용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오기는 하지만 역시 현장에서 가르칠 때 기본이 되는 것은 활자로 된 교재일 것입니다. 교재 한두 권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 학생들이 교재로 사용할 만큼의 책을 대량으로 받는다는 것은 교재 가격만큼의 물류비용이 든다는 것을 의미하니 카자흐스탄 대학의 상황을 볼 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자체 교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재 개발 역시 비용뿐만 아니라 개발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와 역사에 공감하고 한국과 교류, 협력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현지 전문 교수진을 꾸준히 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열악한 대학 급여로 인해 생활이 어려우니 교육 현장을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카자흐스탄 대학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카자흐스탄 내에서 한국어 교육을 책임지고 담당해야 할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지 교수, 연구자들을 양성하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통해 책임지고 한국어 교육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한국인 원어민 교사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한국어 교육은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다른 교육과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가르치되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고, 이해시키되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공감시키되 나 역시 그들에게 공감해야 합니다. 또한 선생이되 학생이어야 하고, 그들에게 길을 보여 주되 나 역시 그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가르치려고만 하고 이해시키려고만 하며, 선생이려고만 하고 나의 길 만을 보여주려고만 한다면 가르치는 선생도, 배우는 학생도 힘들어집니다.
저는 ‘한국어 교육은 토목공사’라고 생각합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 편리한 도로와 다리를 만들고 화려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목공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는 완성된 아름다운 건물, 편리한 도로와 다리만 보지요.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K-문화’, 그 이전에 ‘한류’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전부터 한국어를 통해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정과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의 모든 K-문화가 가능하도록 ‘한국어 교육’, ‘K-언어 교육’은 토목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생계 수단이나 직업의 개념만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실망하는 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한국을 알리고 싶거나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볼 만한 직업일 것입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과 문화를 만나는데 두려움이 없는 분이라면 가장 알맞은 직업이며 보람된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카자흐스탄에 살면서 느낀 좋은 점이나 추천하고 싶은 것, 또는 주의할 점 등)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느낀 좋은 점이라면 교민 대부분이 느끼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카자흐스탄에 와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스키를 카자흐스탄에 와서 젊지 않은 나이에 처음 배우게 됐습니다. 여전히 잘 타지는 못하지만, 스키장을 찾아가서 장비를 착용하고 스키를 타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 여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서 좋습니다. 저도 토요일마다 산악회를 통해서 산에 가는데 그 또한 운동한다는 것, 그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고 천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지만 역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예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이든, 집 근처 골목길을 따라 뒤덮은 나무 사이로 감춰진, ‘비밀의 화원’으로 통하는 작은 샛길이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떤 일이든 카자흐스탄 곳곳에 감춰진, 나만의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일과 더불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고, 카자흐스탄 속의 한국이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한국 속의 카자흐스탄이 더 공감 받을 수 있도록 현장에서 ‘토목공사’를 하며 노력하고 계시는 한국어 선생님들을 잊지 마시고 관심과 배려,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한국어 교육에 대한 장원기 교수의 열정이 좋은 결실을 맺길 응원해 본다.
/한인신문